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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키르케고르: 신앙의 합리성

     

오래전부터 홍성사가 키르케고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려는 기획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이 책으로 그 첫 작업이 이루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으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키르케고르의 저작 목적의 진정한 의도를 잘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의 전 저작이(익명의 저작들과 그의 이름으로 된 저작들 모두) 바른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기 위한 것임을 이 책은 분명히 합니다. 키르케고르와 접촉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의 안내를 따라 진정한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 부디 키르케고르를 따라 나가다가 중간에 멈추어 서는 사람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키르케고르에게 흥미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중간에 멈추어 서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로, 시중의 만연한 오해와 달리 키르케고르가 신앙지상주의(fideism)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앙지상주의라는 말은 흔히 신앙을 강조하긴 하지만 아무 근거없이 신앙하는 것을 지칭하는, 일종의 낮추어 부르는 함의를 지닌 말로 자주 사용됩니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풍차를 큰 거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타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신념과 기독교 신앙은 차이 없이 여겨집니다. 그것이 키르케고르의 의도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키르케고르를 그와 같이 생각한 신앙지상주의자로 몰아가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많은 증거를 들어서 그런 이해가 잘못된 것임을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27).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온 것입니다. ‘신앙의 합리성’.

 

셋째로, 그러나 이 말이 다시 오해될 수 있으니, 우리는 저자가 이 말을 사용할 때의 의미를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저자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이성적 능력으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뜻에서 이 용어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용어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될 것입니다. 그가 잘 드러낸 대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려는 것은 헤겔적인 사변 이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파악하고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32, 그리고 4장 전체), 소크라테스적 방법으로 신앙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32, 53-56). 오히려 기독교 신앙에 합리적 요소와 객관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의 핵심입니다(33, 166, 168, 169). 또한 인간의 의지는 신의 의지에 대해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의존적이라고 주장합니다(37, 165-166). 이 점을 잘 관찰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드문데도 이를 발견하고 강조하고 있는 그의 학문적 노력을 우리는 높이 사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키르케고르에 대한 개혁학적 접근의 좋은 예를 또 하나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비 스미스, 스테판 에반스 등과 함께 이 중요한 작업을 하는 저자와 역자를 치하하고 싶습니다. 이제 이분들을 진정으로 치하하는 것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진정 키르케고르의 의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이 작업을 통해 우리를 섬기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깊이 있는 생각과 진정한 신앙을 통해서 참으로 영원과 이 역사 속에서의 관계성을 지녀 나가기 시작하여, 후에는 하늘에서도 그리고 영원 세계에서도 영원과의 참된 관계를 지녀 나갈 뿐만 아니라, 더불어 키르케고르와 계속되는 교제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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