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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하, <거품을 빼고 보는 요한계시록>

 

어느 새 요한계시록은 사이비와 이단의 전유물이 되었다.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극성스럽고 난해하게 강해하여 성도들이 못알아듣거나 질리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요한계시록을 전혀 설교하지도 읽지도 않든지 두 극단으로 치우치게 만들었다. 사탄의 전략은 주효했다. 신앙적으로 큰 유익이 되며, 문학적으로 탁월함의 극치인 요한계시록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되돌려주도록 돕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거부감은 왜곡된 종말론에 대한 거부감에서 유래한다.

666, 휴거, 7년 대환란 등 세대주의 종말론이 만든 이 내용들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스러운 최후 승리이다. 이 주제에서 벗어난 시간에 대한 추측, 미래에 대한 예언 등은 모두 허황되며 유익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성경적이지 않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막연한 미지의 동경이 있다. 어떤 사람은 요한계시록은 무시무시한 책으로 타부시 하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을 가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계시록은 이단과 사이비의 온상이었다. 요한계시록을 다루는 것이 왠지 게름직하다. 저자도 종말론과 요한계시록의 문제에 대하여 오랜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열쇠를 정통 주류 해석과 레이 로빈슨이 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ay F. Robbins,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에서 찾았다고 하였다. 저자가 이 출처를 밝힌 것이 나는 참 기뻤다. 저자가 솔직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얻은 유익을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 진정성이 나에게 전해졌다.

 

요한계시록은 당시 로마제국이 황제숭배를 강요하던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비밀코드'를 사용하여 쓰여진 것이므로, 약간의 안내를 받으면 쉽게 이해하며 큰 은혜를 받을 수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부제로 유머러스하게 <다 비친 코드>라고 한 것이다. 화제작 <다비친코드>를 패러디한데서 저자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빼내기, 2부에서는 요한계시록 내용 알아가기이다. 이남하의 특징답게 강해하듯이 구절구절을 풀이한 것이 아니라, 누구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핵심주제를 따라서 이야기하듯이 서술하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안에 담긴 주옥같은 보물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소망,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스러운 최후 승리에 대한 감격과 통쾌함을 맛보았다.

 

누가 요한계시록을 두려움의 책이라고, 이단의 책이라고 각인시켰던가?

요한계시록의 교회의 보물이요, 희망과 위로가 충만한 교회의 책이다.

빼앗겼던 요한계시록을 다시 교회가 찾아온다면, 큰 유익과 능력을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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