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을 매일 조금씩 낭독하며 읽는 이 시간이 내게는 하나의 기도이자 묵상이다. 미리엘 주교가 자신의 사제관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쓰이던 좁고 불편한 집으로 기꺼이 이사했다. 는 대목이었다. 그의 새로운 사제관은 작고 단출했다. 정원은 못을 중심으로 십자형으로 길이 나 있고, 그 양옆에는 채소밭과 꽃밭, 그리고 과수나무가 있었다.
주교는 이 정원을 사랑했고, 그 가운데 특히 꽃을 좋아했다. 식물의 학명이나 분류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단지 꽃 그 자체를 사랑했다. Magloire 수녀는 먹을거리를 위해 채소를 더 심자고 제안했지만, 주교는 “아름다움도 실용적인 것만큼 가치가 있다”고 하며 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매일 여름 저녁이면 꽃밭에 물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정원 가꾸기는 그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매일의 기도처럼 소중한 일이었다.
주교는 마치 책을 가까이하듯 이 텃밭도 사랑했다. 그는 하루에 한두 시간쯤 텃밭에서 가치치기, 괭이질,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책을 가까이 하듯이 이 텃밭(the plots)을 사랑했다. 하루 1-2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직 농부는 못된다. 일주일에 잠시 텃밭을 둘러볼까, 텃밭을 돌보는게 루틴이 되지 않아서 지금 텃밭에는 고추와 오이와 토마토와 함께 잡초가 무릎까지 자랐다. 미리엘 주교는 이처럼 자연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다.
그는 학식 있는 사람들을 깊이 존경했으며, 무식한 사람들을 더욱 존경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존경심을 결코 잊지 않으며, 여름 저녁마다 늘 녹색으로 칠해진 양철 물뿌리개로 꽃밭에 물을 주었다.
미리엘 신부는 참으로 균형이 있다. 부자라고, 학식이 있다고 질투하고 욕하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배운 자나 무식한 자나 모두 존경했는데 무식한 사람을 더 존경했다니, 그것은 인간의 본래 존엄성을 존중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와 죄인을 사랑했던 것처럼.
나는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새 나도 텃밭을 가꾼 지 3년째가 되었다. 올해 봄, 이웃 농부 한 분이 내 밭을 보며 “올해는 대풍이네요”라고 칭찬해주셨을 때,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나 혼자의 힘만은 아니었다. 동네 할아버지 장로님과 우리 교회 권사님이 모종도 나눠주시고, 거름도 주셨다. 비닐도 씌워주시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찾아와 물을 주시며 돌봐주셨다. 그렇게 자란 고추, 오이, 가지, 상추, 옥수수, 토마토는 단지 식탁에 오른 반찬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열매요, 손과 땅의 기도였다.
농사에는 흙하고 물이 제일 중요해요.
올해는 특별히 7월 29일에 쪽파를 심었다. 쪽파는 수시로 7월, 8월, 9월에 나누어 심으려고 한다. "농사에는 물이 중요해요." 우리 장로님이 무심코 한마디 한 이 말을 기억하며, 일주일에 3회 정도 물을 주려고 한다. 작년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이웃이 준 쪽파 씨앗을 받아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끔은 출타 일정에 쫓기다 보면 물 주는 것도 잊고, 정성스레 가꾸는 마음도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오늘 미리엘 주교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꽃에 물을 주는 일’ 하나도 빠뜨리지 않던 그의 태도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단지 정원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매일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그 행위를 예배처럼 여겼던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내 작은 밭 앞에 서고 싶다.
두 가지 존경심을 가지라!
"그는 배운 사람을 대단히 존경했으며, 무지한 사람을 더더욱 존경했고, 이 두 가지 존경심을 잃어본 적이 없이, 매년 여름 저녁이면 녹색으로 칠해인 양철 물뿌리개로 텃밭에 물을 주었다."
그는 배운 이들을 존경했고, 무지한 이들을 더욱 존경했다고 한다. 이유는 구체적으로 말해지지 않지만, 아마 예수님의 삶을 닮은 존중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말한 무지한 사람은 정규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와 소시민을 말한 것이 아닐까.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는 말씀처럼, 그는 사람을 지식이나 학문으로 평가하지 않았고, 누구 안에든 있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존엄은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처럼, 이유 없이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흙을 만지고 텃밭에 물을 준다. 어제보다 더 겸손하게, 더 정직하게, 더 감사하며. 텃밭은 나의 신학이 되고, 나의 기도가 되며, 나의 삶이 되어간다. 엇그제 고향에 있는 형과 통화했다. 마침 형은 텃밭이 얼마나 유용한지, 삶을 풍성하게 하는지, 행복하게 하는지 거듭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몸의 건강삼아 조금 시작했는데, 이 텃밭이 곡간 창고가 된 것이다.
텃밭의 가치는 대단해! 이곳이 나의 스튜디오야. 숨 쉬고, 생기를 얻고, 편안히 쉬며, 일하고, 양식을 얻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