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고대 사회에서 환대(XENIA)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명예 시스템과 연결된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환대는 그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는 달려가 맞이하고 부복하며 말합니다. “내가 물을 가져오고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나그네를 대접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대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낯선 손님의 모습으로 조용히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환대는 친절을 넘어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을 마련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라합과 롯의 이야기처럼, 환대의 문이 열릴 때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실 때 사라는 웃습니다. “내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왜 웃느냐?”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의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불가능의 웃음이었습니다.
우리도 현실을 보면 웃음이 날 때가 있습니다. 가정과 자녀, 재정과 건강, 영적 상태를 볼 때 “정말 될까?” 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비웃음을 붙드셔서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십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고백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부수시고, 믿음의 고백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가 남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내년 이맘때”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받아 24년을 기다리며 흔들렸고, 인간적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시 “1년을 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마모시킵니다. 명예도 미모도 건강도 업적도 시간 앞에서는 깎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동시에 진짜를 드러냅니다. 거품은 꺼지고, 가짜는 무너지고, 참된 것은 남습니다. 우리의 직업도 신앙도 사랑도 결국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 길은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을 열 때. 시간 앞에서 순종하겠습니다, 믿음을 선택하고, 그러므로 나는 오늘 환대를 베풀고.”하나님이 하신다“. 결론은 분명합니다